정대진 교수 "차기 정부, 北에 비평화적 접근 없다는 메시지 내야"
[3040, 차기 정부에 바란다]②…정대진 한라대 교수
"여야, 외교·안보 안정화 위해 '초당적 협력' 필수적"
- 최소망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차기 정부는 북한에 선제공격이나 흡수통일 같은 비평화적인 접근이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핵이 필요 없는 한반도 안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합의와 노력을 상기시켜야 한다."
남북관계는 윤석열 정부 3년간 '악화일로'를 걸었다. 접경지에선 남북이 확성기로 고성을 주고받았고, 남북의 '연결'을 상징하던 경의·동해선 연결도로가 폭파됐으며, 당국 간 직통 연락선은 끊겼다.
정대진 한라대 교수(47)는 이러한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차기 정부가 북한에 더 이상 '비평화적인 접근'이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흡수통일이나 선제공격의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북한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한국에 대한 신뢰를 조속히 회복할 방안을 찾는 것도 차기 정부의 시급한 외교·안보 정책으로 꼽았다. 복잡한 한국 정치 상황과 관련해 "정권의 방향성보다 영속적인 대한민국 정부의 기조를 중심에 두고 상대방을 안심시킬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갑작스런 한국의 정권 교체와 미국의 압박이 제기되는 현재의 외교·안보 위기를 점수로 매긴다면(1~5점, 높을수록 위기).
▶3.5점 정도다. 5가 전면적 무력 충돌, 4가 국지적 무력 충돌이라 하면 바로 그 직전의 상태로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권력이 공백인 상황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독특한 미국의 리더십이라는 변수가 공존하고 있어서다. 아울러 문명사적으로도 인공지능으로의 전환(AI Transformation)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선도적 투자나 전략적 정책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6월 대선 후 새 정권이 들어서도 여러 국정 과제를 제대로 검토하려면 적어도 10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인데, 상대방도 동시에 움직이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우리가 놓치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대단히 엄중하고 보수적으로 외교·안보적 위기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
-차기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 추진에 있어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
▶국제정세 전반이 요동치는 가운데 내부적인 정치 격동까지 겹친 상황에서 차기 정부가 출범한다. 우선 한국 외교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잘 유지·강화하고, 우호적인 주변국 관계 형성을 위해 급격한 대외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정책과 예측 불가능성을 감안하면 무조건적인 '한미동맹 최우선주의'를 금과옥조로 삼을 수는 없다. 미국으로부터 비슷한 압박을 받는 일본과 공조를 강화하며 한미일 협력의 큰 틀은 유지하되, 우리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본에서 보도된 '하나의 전구'(one theater) 같은 구상이 현실화하거나 우리를 배제한 채 관련 논의가 확산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한국은 '전쟁 불용'과 '긴장 조성 반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유지 등 변치 않는 기조와 원칙을 가지고 있음을 새 정부 초기에 국제사회에 확인시켜 줘야 한다. 트럼프 발 관세 폭풍에 대응해 한일이 협력하고 유사입장국(LMC)뿐만 아니라 유사한 상황에 빠진 국가들과 다자협력을 확대해 폭풍 같은 시기를 지나가야 할 것이다.
-외교·안보 위기의 안정화를 위해 새 정부 출범 후 여야가 반드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은 '초당적 협력'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다. 여·야·정부가 함께하는 형태로 초당적 협력체가 필요하다. 대미 협의, 주변국과의 외교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하다. 이럴 땐 국회가 함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선거 정세의 유불리에 따라 외교·안보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정쟁은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아서 반덴버그 전 미 상원의원)는 말이 있듯, 정파적 이익을 위해 외교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남북이 따로 살자'는 북한의 구체적 구상이 잘 잡히지 않는다. 북한의 구상은 대체 무엇일까.
▶북한의 '두 국가' 선언은 '위대한 김정은 조선 만들기'의 연장선상의 정책이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그저 그런 지도자로 늙어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와는 다른 시대적 환경 속에서 '선대와의 절연', '흔적 지우기'를 옵션으로 선택했다. 남한과 경쟁을 하거나 협력을 강화하면 남한의 전략에 '블랙홀'처럼 빠져들어 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벽을 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패밀리 비즈니스'로서의 국가 경영을 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선대와 다르게 남한과 통일하지 않겠다는 대남 인식 변화의 가장 큰 변수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이기도 했다. 김일성 때는 '혁명 통일론'에 입각해 재야인사, 학생들을 위주로 하는 '하층 통일 전선', 김정일 때는 남한 권력·정치 엘리트와 손을 잡는 '상층 통일 전선'을 내세웠으나 결정적 성과가 없었던 것을 김정은은 잘 알고 있다.
특히 김정은은 2018~2019년 직접 외교의 전면에 나서며 자신만의 상층 통일 전선을 내세웠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며 관망·유보의 기조를 장기간 이어갔다. 그러다 북한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윤석열 정부를 보며 '더 이상 남한과 뭔가를 할 수 없겠다'고 판단해 '통일 불가론'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기조의 변화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지만,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북한의 두 국가 선언으로 남한의 통일정책도 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최종 목표는 '1민족 1국가'다. 이는 남북을 두 국가로 보는 관점도 일부 반영된 것이다. 그 과정에 화해 협력 단계와 남북 연합 단계라는 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남북 두 국가'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우리의 대북 정책에 반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책 결정자들의 입장에선 당장 '통일하자'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통일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굉장히 지루하고 긴 작업이 될 수 있지만 보수·진보는 물론 전문가, 모든 국민이 의견을 모아야 남북관계에서의 진정한 성과가 나올 수 있다.
-통일을 '선'(善)으로 보는 한국 사회의 통일 담론이나 통일교육이 바뀌어야 할까.
▶열린 논의가 중요하다. 통일과 관련한 다양한 최종 상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최종 상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따른 최종 목표는 단일 국가인데, 이를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요즘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종 상태의 다양화를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 통일의 중간 과정도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다.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에 맞출 수 있게 능동적으로 국민 눈높이와 인식을 바꿔나가고 시각을 함양시킬 필요는 있다.
-북핵은 남북 간 의제가 아닌 외교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듯하다. 앞으로의 북핵 협상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 정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국이 북한과 이야기하도록 한미동맹의 소통 메커니즘을 잘 활용해야 한다. 추후 북미대화가 열려도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위협만 줄이고 우리를 향하는 단거리 핵미사일의 위협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를 막으려면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북미 핵 협상 때 미국이 '남북 불가침 선언'을 북한에 관철시키도록 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려면 경제적 이익을 확보해 주면 되는데, 이를테면 금강산과 설악산을 연계한 리조트와 같은 획기적인 제안으로 미국의 투자 조건을 열어줄 수도 있다. 이 방식이 혹자에겐 자주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결국 자주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 생각한다.
-북한을 남북 양자대화의 장으로 끌고 나올 획기적 방안은 무엇일까.
▶군사적 문제인 북핵 문제를 건드리긴 쉽지 않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4대 기조인 선이후난(先易後難)·선민후관(先民後官)·선경후정(先經後政)·선공후득(先供後得)이라는 처방전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남북관계는 현재 다 무너진 상황이기에, '실용적 남북 관계'라는 신기능주의적 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시에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흡수통일은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가치 중립적인 문제,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작은 걸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계엄, 탄핵 정국과 대선 국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남한의 지도자가 누가 선출될지 관심을 가지고 볼 것이다. 차기 정부의 성향, 기조를 보고 자신들의 경제·군사적 이익은 물론 체제 유지 방안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심 중일 것이다. 다만 과거처럼 진보나 보수 등 특정 진영 후보를 지지하거나 저지하는 등 해묵은 통일전선전술을 활용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후계 구도는 '주애'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을까. 여성인 주애가 후계자라면, 북한 체제 변화의 단초로 볼 수 있을까.
▶현시점에선 주애가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다. 생물학적 성별은 여성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주애의 정치·사회적 배경이다. '백두혈통'이기에 생물학적인 성별이 중요한 변수가 아닐 것이라는 뜻이다. 오히려 정치적 성별로는 남성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백두혈통의 세습이라는 측면에선 북한의 체제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라 보기 어렵다.
다만 여성 엘리트의 확대 등의 변화는 두드러질 수 있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노동당 회의체에서 후계자로 공식 인정이 됐던 만큼 주애가 추후 어떤 방식으로 당 회의체에 모습을 드러낼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정대진 한라대 교수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98학번으로 법학을 전공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2004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4년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통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통일교육원 강원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공정한 국제질서와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한반도 스케치북',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 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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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1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040세대(30~40대) 교수와 전문가를 릴레이 인터뷰한다. 정치·외교안보·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소장(少狀) 학자들의 생각을 담았다. 현장과 소통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조기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