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아르헨 간에 벌어진 20C 마지막 식민지 전쟁 [역사&오늘]
4월 2일, 포클랜드 전쟁 발발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82년 4월 2일, 남대서양의 작은 섬 포클랜드(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를 둘러싸고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20세기 후반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준 포클랜드 전쟁이다.
포클랜드 제도는 1833년 영국이 점령한 섬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지속적으로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 1960년대 유엔은 이를 식민지 문제로 규정하고 양국 간의 협상을 권고했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1980년대 초,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국내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포클랜드 침공을 선택했다.
전쟁은 아르헨티나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영국은 기습에 당황했지만, 즉각 대규모 함대를 파견해 반격에 나섰다. 치열한 해상 전투와 공중전이 벌어졌고, 양측은 최신 무기를 동원해 격렬하게 맞섰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엑조세 미사일은 영국 함대에 큰 피해를 입혔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영국을 적극 지원했다. 유럽경제 공동체(EEC)는 영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아르헨티나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반면에 남미 국가들은 아르헨티나에 폭넓은 지지를 보냈다. 다만, 유럽에서도 스페인은 암묵적으로 아르헨티나를 지지했다.
영국은 대규모 함대를 파견해 해상 보급로를 확보하고, 아르헨티나의 보급을 차단했다. 영국군은 아르헨티나군에 비해 해군, 공군, 육군 등 모든 병력에서 우위를 점했다. 보급 능력도 아르헨티나를 압도했다.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은 항복했고, 영국은 포클랜드 제도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포클랜드 전쟁은 양측에 큰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안겼다. 이 전쟁으로 아르헨티나군 649명, 영국군 255명이 사망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군사정권이 몰락했고, 영국에서는 당시 마거릿 대처 총리의 지도력이 부각됐다.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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